옛날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가 여러 지방을 유랑하면서 유력한 세력가들에게 빌붙어 다니다가 당시 양양성 부근의 융중에 은거하던 제갈공명을 삼고초려 끝에 얻어 졸지에 천하의 한 구석을 얻게 된 일은 삼국지를 통해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유비는 비록 중국에 새로운 왕조를 창건한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중국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위인 중의 한 명이다. 그런 유비에게는 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라는 든든한 장수가 있었지만 그들의 도움만으로는 조그만 고을의 수령 노릇 밖에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좀 더 전략적으로 사고를 할 줄 아는 그 동안 그가 데리고 다녔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랑생활을 하면서 그런 인재를 계속해서 찾고 있던 중 서서에게 제갈공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유비는 새로운 사람을 영입하여 자기 조직의 2인자의 자리를 내주었을 때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관운장과 장비라는 존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20여 년 동안 숱한 전쟁터를 돌아다니면서 세운 공로로 관우와 장비는 이미 천하의 맹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개 무명 서생에다가 나이도 아들 또래 밖에 먹지 않는 제갈공명이 2인자의 위치에서 명령을 내릴 때 두 사람은 결코 그 명령을 받아 들이 지 않을 것이라고 유비는 생각한 것이다. 유비가 26세의 제갈공명을 영입 할 때 그의 나이는 48세, 관운장 47세, 장비 45세 였었다.
그래서 유비가 생각해 낸 것이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퍼포먼스인 것이다.
삼고초려라는 퍼포먼스로 유비가 노린 것은 관운장과 장비에게 “ 너의 형님 되시는 내가 이렇게 지극히 존경하는 분이니 너희들은 나를 본 받아 비록 새로 영입된 사람이 나이가 어린 일개 서생이라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말라”라는 무언의 암시였었던 것이다.
또한 유비가 자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일부러 도망 다니며 만나 주지 않고 한 수의 시를 지어 자기의 뜻을 전했다. 그가 지어 후세에 남긴 유일한 양보음(梁父吟)이라는 제목의 시다.
양보(梁父)라는 말은 양보산을 말한다. 천명을 받은 중국의 황제는 하늘의 신에게는 태산(泰山)에서, 땅의 신에게는 낮은 구릉인 양보산에서 지내는 제사를 봉선(封禪)이라고 했었다.
즉 봉선이란 황제가 태산에서 행하는 의식을 봉(封), 양보산에서 행하는 의식을 선(禪)이라 한데서 나온 말이다. 제갈공명이 위의 양보음을 통해서 유비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자기를 불러서 천하를 경영할 생각이 있다면 당신과 함께 20여 년간을 싸움터를 누비고 다니며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당신 의형제에 대한 조치를 먼저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신호인 것이다. 비록 유비가 천하를 지배를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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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통해 공명을 다시 생각하다
헤밍웨이님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보며 공명을 다시 생각하다. 공명은 참으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그리고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이다. 삼고초려가 나오는 부분은 공명 자신이 쓴 출사표에서 이다. 삼고초려를 바라본 주인공 중 혼자만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였다. 삼국지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이 공명입니다. 또한 삼국지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공명이겠지요. 도원결의를 한 관우에 대하여 끊임없는 견제를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물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