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역사서를 주로 읽었다.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중국의 역사를 지나치게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 있는 중화사상과 주로 중국측 기록에 의존한 우리의 역사 지식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병자호란 때 우리가 겪었던 삼전도의 치욕이나 일제 36년의 식민지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중국인은 수많은 치욕과 수모를 겪어 왔다.
기원 전후경 중국은 빈번히 흉노라고 불리는 북방 기마민족의 침입을 받아 그 방비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흉노는 몽고계 또는 투르크 계로 불리는데 활솜씨와 승마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 언제나 바람처럼 기습하여 활세례를 퍼붓고 물건을 약탈한 후 바람처럼 사라지곤 했다.
평상시 그들은 중국 북부에 흩어져 살면서 말을 타고 유목과 수렵 생활을 하고 있었다. 초원에서는 봄에서 여름에 걸쳐 배부르게 풀을 먹은 말이 가을이 되면 통통하게 살이 오르지만 어느새 풀은 시들고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면 대지는 꽁꽁 얼어붙게 된다.
겨울이 오기 전에 흉노는 살찐 말에 올라타고 겨울 식량을 구하기 위해 따뜻한 남쪽 중국 본토로 밀려온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은 가을이 되면 흉노의 습격을 두려워했다.
[한서]는 `흉노는 가을에 온다. 살찐 말과 강한 활과 함께` 라고 중국인들의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약 350년간은 북방의 유목민족인 흉노와 남방의 농경민족인 한이 전쟁과 화친을 되풀이한 남북 대립의 시대였다. 당시 양측의 관계는 힘으로서는 굴욕적이다 싶을 정도로 흉노의 일방적인 우세 속에서 유지되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선우(흉노의 최고 지도자)에 오른 묵특이 만리장성 이북의 초원지대를 통일한 때는 마침 한고조 유방이 항우를 멸하고 한을 세운 때였다. 이 두 거대 세력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기원전 201년 유방의 심복이었던 장군 한신이 흉노군에 포위당하자 투항, 흉노 편에 가담한 사건이 발생했다. 진노한 유방은 직접 대군을 지휘하여 흉노를 공격하다가 평성이라는 곳에서 묵특의 군사에게 포위당하게 되었다. 죽음의 위기에 빠진 그는 묵특의 부인에게 뇌물을 주고 구명을 호소했다.
그녀는 묵특을 “두 군주께서는 서로 다투지 마십시오. 지금 한나라 땅을 얻는다 하더라도 초원에서 말 달리신 선우께서는 끝내 그곳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라며 설득했다.
묵특은 이에 유방의 목숨을 건져 주고 화친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의 내용은 형제맹약의 체결, 한의 공주가 선우에게 시집갈 것, 흉노에게 매년 솜, 비단, 술, 곡식 등 물자를 공급할 것 등이었다. 한으로서는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이었고 이런 형태의 조약은 이후의 역사에서 송, 명과 북방의 거란, 여진, 몽고족 사이에서 반복되어 나타난다. 흉노가 한을 얼마나 조롱했던가를 좀더 살펴보자.
한고조 유방이 죽은 후 선우는 유방의 미망인에게 편지를 띄운다. “나 의로운 군주는 소와 말이 가득한 들판 가운데서 항상 죽국에 가 노닐고 싶었노라. 이제 그대도 홀로 되었고 독수공방 외로우니 우리 두 사람 모두 즐겁지 않을 것 같소. 우리 서로 갖고 있는 것과 갖지 않은 것을 바꿔 봄이 어떻소.” 이런 모욕적인 추파에 유방의 미망인은 “선우께서 저희 나라를 잊지 않고 글을 내려 주시니 우리는 그저 두렵기만 할 뿐입니다. 물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는 연로하고 기력이 쇠하여 보행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선우께서는 과히 허물치 마시고 제게 그같이 힘든 일을 요구하지 말아 주십시오. 대신 수레 두 대와 말 두 짝을 보내 드리옵니다” 라는 답장을 했다.
이는 한-흉노 관계가 거의 일방적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화친조약이 체결된 후에도 흉노는 2,3년을 주기로 주로 가을에 중국을 침략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조약을 체결, 물자를 약탈해 갔다. 이런 관계가 한의 우위로 뒤바뀐 것은 월남과 조선을 정벌하여 무위를 떨쳤던 한무제 때에 이르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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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 사와다 이사오 지음, 김숙경 옮김/아이필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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